ESG와 녹색 경제는 과거 몇 년간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중요한 화두였지만 그 파급력과 관심도는 점점 떨어지는 추세다. 높은 투자 리스크 대비 낮은 리턴, 탄소 절감 실효성에 대한 의문 등이 녹색투자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유럽, 동남아 시장 등 해외시장의 경우 지난 몇 년간 국내 시장 대비 더 적극적인 탈산소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는 공공(public) 및 개인(private) 투자를 혼합하는 혼합 금융, 탈탄소 중심의 대형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탈탄소 투자를 유도하는 협력 클러스터 등의 솔루션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한국 시장의 ESG 현황
약 6억7660만 t. 2021년 기준 국내 온실가스 총배출량이다. 이 중 에너지 산업의 비중이 약 90%로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다음이 산업 공정으로 그 비중은 약 8% 수준이다. 2022년 잠정 배출량은 6억5450만 t으로 전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승한 2021년과 달리 약 3.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현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새 에너지 정책의 효과와 더불어 에너지 다소비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함에 따라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단,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과거 10년간 눈에 띄는 감소폭을 보이진 않고 있다. 향후 에너지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정부와 기업 모두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및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감축 노력을 이행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 기업의 상황은 어떨까? 국내 기업들의 탈탄소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글로벌 시장과 통계 수치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의 탈탄소 현황 진단을 위해 사용되는 지표는 SBTi(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다. 이는 2015년 세계자연기금(WWF)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세계자원연구소(WRI)가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공동으로 수립한 지침과 방법론이다. SBTi는 단순히 가입을 넘어 실질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기업들은 2023년 기준 총 59개 기업이 SBTi에 참여하고 있으나 이 중 탄소중립 관련 실질적인 목표를 설정한 기업은 단 3곳에 불과하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살펴보면 2030년 NDC 40% 목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대기업 50곳의 경우 탄소배출량은 3년간 오히려 약 6% 증가했다. 온실가스 감축 추세를 역행하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대제철, 삼성전자, S-Oil, GS칼텍스 등 에너지 수요가 많은 중후장대 기업 위주로 배출량이 증가했다. 다행히 매출액 대비 배출량은 감소 추세이지만 2030년 국가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많은 기업이 ESG와 탄소 감축 등의 비전을 공표했음에도 실질적인 탄소 절감 실적을 내는 녹색투자 사례는 많지 않다. 또한 한국ESG기준원(KCGS)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ESG 통합 등급이 A 이상인 기업은 약 25%에 그친다. ESG 현황 통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많은 국내 기업이 ESG 경영 노력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녹색투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국내 기업 혹은 투자자들이 탈탄소 과제를 진전시키지 못하면 어떤 위기에 봉착할까? 탈탄소 과제 이행이 느릴 경우 기업 혹은 투자자 입장에서 겪게 될 수 있는 잠재적 파장 효과는 다음과 같다.
1. 제품 수출 제한
한국 시장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대외 수출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2022년 한국의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율은 100%를 초과한다. 미국이 2020년 기준 31%, 일본이 38% 내외인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대외의존도는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은 점차 수입 항목들에 대해 산림 전용 방지 제품에 관한 규정(EUDR) ,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ESG 및 녹색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충족하지 않으면 미국 및 유럽 지역으로 제품을 수출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 기업가치 및 외부 평가 압박
자본시장은 국내 기업들에 ESG 압박을 가할 또 다른 요소다. 예컨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해외에서 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을 진행 중인 한국전력에 석탄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근거를 밝혀 달라는 요구를 한 적 있다. 과거 집속탄 사업을 운영해 대내외적으로 지적을 받은 한화그룹은 ESG 경영이 미진하다는 이유로 네덜란드 연기금으로부터 투자금 회수 압박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외부 이해관계자의 압박은 국내 기업들이 ESG 전환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3. 소비자들의 ESG 제품 선호도 증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60%가 기업의 ESG 활동이 제품 구매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나아가 약 70%의 응답자는 ESG 경영에 부정적인 기업의 제품을 의도적으로 구매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ESG 활동이 호감도 개선에 영향을 미쳤는지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약 30%가 기후변화 대응을 가장 주요한 활동으로 꼽았다. 이와 같이 MZ세대들의 가치 소비 증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이 최근 몇 년간 화두가 되면서 소비시장은 변곡점에 섰다. 향후 국내 기업들이 녹색 전환 및 탈탄소 움직임에서 뒤처지면 소비자로부터의 직접적인 압박을 받는 현실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녹색투자 장벽 넘는 솔루션
이처럼 탈탄소 과제 이행을 위한 녹색투자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업들의 관련 투자 집행이 미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높은 투자 리스크다. 자본시장에서 녹색투자는 아직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 투자 업계에선 이익을 창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고위험군 투자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또한 정권 교체 등 정치 변수에 따라 장기간 준비한 녹색 프로젝트들이 중단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정책 의존도가 높은 사업이 많은 탓에 일부 투자자는 녹색투자가 예측하기 어렵고 정치적 위험 부담이 큰 투자로 여긴다. 따라서 대규모 자본을 가진 펀드 혹은 기업은 투자를 집행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 또한 높은 투자 리스크에 비해 리턴은 낮은 편이다. 녹색투자에 대규모의 자본 투자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타 투자 대비 낮은 수익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기존 시설 대비 가동률이 낮고 실효성은 떨어지는 데다 세제 혜택 및 보조금 등 지원 정책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탄소 절감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녹색투자 집행을 가로막는 주요 장벽 중 하나다. 기업 입장에서 녹색투자를 집행하는 목적은 투자수익률(ROI) 등 재무적 효과보다는 실질적인 탄소배출량 감축이 주된 기대 효과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높은 투자 리스크와 낮은 투자 리턴으로 인해 탈탄소화 기술 등에 실제로 투자한 전례는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실질적인 탄소 절감 효과와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큰 것도 사실이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탈탄소 기술 등에 투자했음에도 실제 탄소 배출 감축 효과가 예상 대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감축 효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녹색투자 집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녹색투자를 가로막는 이런 장벽들은 해외시장에도 유사하게 존재한다. 다만 미국, 유럽, 동남아 시장 등 해외시장의 경우 지난 몇 년간 국내 시장 대비 더 적극적인 탈탄소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는 앞서 언급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혁신적인 금융 솔루션을 개발해 도입하는 등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 탈탄소 기술 등에 투자해 실질적인 탄소 절감 효과를 이미 경험하고 있는 사례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국내 기업이 참고할 만한 해외 녹색투자 성공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혼합 금융
‘하이 리스크-로 리턴(High-risk & Low return)’이라는 장벽을 허물기 위해 최근 일부 선진국에서는 여러 금융 수단이 개발되고 실제 프로젝트에 접목되고 있다. 혼합 금융(Blended finance)이 대표적이다. 혼합 금융은 최근 몇 년간 글로벌 ESG 시장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혁신 금융 솔루션 중 하나다. 기본적인 개념은 공공 및 개인 투자를 말 그대로 혼합해 녹색투자에 대한 리스크는 낮추면서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하는 투자 메커니즘이다. 다국적 개발은행, 자선단체 혹은 ESG 펀드 등이 현재 활용 중이다. 다국적 개발은행 혹은 자선단체 및 펀드 등이 낮은 금리, 원금 회수 최후순위 등 지원 성격의 양허성 자금(concessional fund)14 을 제공한 다음 이를 토대로 전체 펀드 조성의 마중물 역할을 하면서 이후 은행 및 기업 등 후속 투자자를 유치해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 혼합 금융의 일반적인 프로세스다. 혼합 금융의 장점은 여러 투자처를 유치해 리스크를 분산함으로써 녹색투자에 소극적인 투자자들을 모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한 경우 상당 규모의 자본을 유치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라오스 아시아개발은행(ADB, Asia Development Bank)의 풍력발전 프로젝트(Wind Monsoon Project)는 혼합 금융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혼합 금융 프로젝트의 핵심은 여러 투자자와 기관들이 매우 복잡하게 연결돼 있으나 다국적 개발은행인 ADB가 중간 조율자 역할을 수행하며 여러 투자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해 대규모 자본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투자자들의 투자 리스크를 효율적으로 분산해 모든 참여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도 핵심 포인트다. 또한 이 혼합 금융 프로젝트를 진척시킨 촉매는 단연코 타 기관투자가들보다 금리 등의 조건을 조금 더 양보했던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 캐나다기후펀드(CFPS) 등 선진 국가 기관들이었다. 이런 양허성으로 양보하는 펀드들은 대부분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정부 자금 기반의 펀드들이며 탄소중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금이 있는 선진국들이 먼저 손을 들고 리스크를 일정 부분 안고 가는 성격이다. 이처럼 선진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투자가, 펀드의 참여와 ADB와 같이 중간에서 매력적인 수익-위험(risk-return) 프로필을 설계할 수 있는 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성공적인 혼합 금융 프로젝트의 핵심 요인 중 하나다.
2. 협력 클러스터 실질적인 탄소 절감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들이 쉽사리 녹색투자를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는 ‘협력 클러스터(Collaborative Cluster)’를 통한 탈탄소 투자로 탄소 배출을 절감하고 ROI 임팩트가 발생하는 실제 사례가 나오고 있다. 협력 클러스터는 에너지 공유 및 탈탄소 중심의 대형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탈탄소 투자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국내 기업들이 녹색투자의 실질적인 탄소 절감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추가 투자를 망설이는 반면 해외에서는 이런 협력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기업 간 파트너십 혹은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새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단순히 산업단지 조성을 넘어 기업들이 탄소 절감 기술 등을 공동 개발 및 활용함으로써 여러 기업에 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잘 전파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이런 단지 조성의 실적과 대내외적 파장 효과는 탄소 배출 절감뿐만 아니라 탈탄소 기술 투자 기회 확대, 일자리 창출 등 현지 사회 공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녹색 협력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서는 우선 정부 차원에서 국가 탈탄소 여정을 위한 주요 마일스톤으로 탈탄소 중심 산업단지 조성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유관 정책 개발을 통해 탈탄소 중심 산업단지 조성 관련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단지 내 재생 에너지 그리드(grid) 인프라를 구축해 기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도 감축해야 한다. 이런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 정책뿐만 아니라 기업들 간의 적극적인 파트너십 및 합작 법인 설립도 성공적인 협력 클러스터 조성의 핵심이다.
국내 기업 및 투자자들을 위한 제언
향후 국내 기업들과 투자자들이 실질적인 녹색 전환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세한 ESG 로드맵부터 수립할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 목표와 로드맵을 설정하고, 이와 연계해 기업 레벨에서 로드맵과 마일스톤을 설정하는 것이 녹색 경제 수립의 핵심 발판이 될 것이다. 정부와의 협업과 정책 마련을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많은 아시아 국가의 기업들이 녹색 전환에 소극적인 배경 중 하나는 정부의 소극적인 관련 정책 개편이다. 녹색 전환을 가속화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세제 혜택 또는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지만 이런 명확한 정책이 갖춰져 있는 아시아 국가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국내 대기업들은 동남아 기업들과 같이 정부 기관과의 긴밀한 협업과 정책 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녹색투자 및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 등의 장려 정책을 함께 고민하고 구상해야 한다.
또한 국내 특화 금융 솔루션 개발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하이 리스크-로 리턴’이라는 녹색투자의 태생적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는 혼합 금융 등 혁신적인 투자 솔루션 개발에 힘써야 한다. 단 여러 기관 및 주체가 함께 모여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위험-수익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 기관 및 주요 권역의 개발은행 등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최근 동남아 지역에서는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녹색투자 관련 전문 기관을 설립하고 필요한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적극적인 인적자원 확보 노력도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 역시 관련 인적자원 및 전문성 확보를 위한 기관 설립과 조직 내 전담팀을 꾸리는 등 인재 확보를 위한 노력도 수반해야 할 것이다.
출처: DBR, 2024년 5월 Issue 2 |